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붐비던 마음에 불현듯 고요가 찾아드는 순간, 갑자기 불어온 바람 그것은 겨울도 봄도 아니다. 오랫동안 비워둔 작은 공간에는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바람이 뒤섞여 들쑥날쑥 작고 여린 가지들을 흔든다.
28/Apr/2013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말 뒤에 가리어진 나의 수줍은 언어들은 둥글게 모여 앉아 회의를 시작하고, 잘 마른 낙엽처럼 바스락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귀여운 나는 계속 못 본 체 한다. 회의의 결과는 보고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가끔은 슬쩍 일러주지 않을까 한 번 힐끔 두 번 힐끔 해봐도 여전히 바스락거림만이 느껴질 뿐 달라지는 건 없다. 얄미웁고 또 얄미웁다.
23/Apr/2013
윤상 - 소심한 물고기들
혀 끝을 맴돌던 그 말들은 소리가 되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 버렸네 다시 헤엄치고 있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캄캄한 내 머리속의 바다를
타고나거나 혹은 선택하거나. 주어진 운명에 따라 그저 제 몫을 다하는 것일 뿐, 누구도 그들의 삶에 대해 가치를 논할 수 없다.
- <종로의 기적>을 본 어느날의 메모
26/Mar/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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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뭐하고 지내. 눈 수술은 잘 됐어?? 생일은 어케 보냈어? 롯대월드는 언제 마지막 간 거였어? 나처럼 멋지게 생일 파티해준 사람 이번에 있었어? 도봉산은 어때? 아직도 독립영화 자주 봐? 음악은 요즘 뭐 들어? 다이어트하고 있어? 꿀떡이는 몇살이야? 나한테 잔소리 안 하니깐 안 심심해? 난 짧았지만 너랑 많은 걸 나눴던지라 아직도 너의 흔적이 내 습관에 남아 있구나. 그립다 내 친구. 보고 싶고 지금 딱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 커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구나. 내가 편지할게. 반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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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나야 늘 회사-집-회사-집 하며 지내. 눈 수술은 잘 됐어. 무서웠는데 다행히도. 생일날엔 그냥 집에 있다가 동네친구 만나 허름하고 맛있는 동네 치킨집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었어. 우리동네가 새마을운동 비주얼 간지에 아직 12,000원이면 숯불구이치킨에 밥까지 비벼주는 동네야. 그러니까 빨리 놀러 오는 게 어때. 롯데월드는 뭐 예상했을테지만 너랑 간 게 마지막이지. 너처럼 분명 멋진데 실소 튀어나오게 허술한 애는 아직 내 주변에 너 뿐이네 하하하… 도봉산은 날이 풀림과 동시에 등산객들이 찬란한 아웃도어 제품을 뽐내며 아줌마 아저씨들이 눈이 맞으면서 불륜의 성지로 다시 왕성하게 꽃이 피고 있다. 독립영화는 여전히 내 삶의 자양강장제정도? 요즘엔 미국인디밴드가 이상하게 끌려. 약간 컨트리 풍의. 다이어트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너도 마찬가지 일거라 믿음) 꿀떡이는 두 달 뒤면 벌써 두 살인가 헐..? 정말? 물론 잔소리하고 싶어 너무너무너무. 요즘 니 생각 엄청 많이 한다. 똑같이 멘탈 쪼다였던 친구가 멀리 있으니 의지할 곳이 별로 없네. 끼리끼리 모인다고 쪼다 곁엔 쪼다들이 많을 법도 한데 다들 쪼다인 걸 감추고 사는 건지 내가 제일 쪼다같아 보여. 너 임마 잠깐이라도 보게 한국 와. 1박 2일 도봉산 투어 시켜줄게. 편지는 잊을만할 때쯤 보내줄거지? 안 기다릴게. 네 반쪽이
새해를 알차게 보내보자며 같이 샀던 2013 몰스킨의 안부를 묻던 중, 친구는 직장 상사의 욕을 데일리 칸에 차곡차곡 적은 다음에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근 후 퇴근한다고 했다. 욕해놓고 열쇠로 잠근다니 이것은 굉장한 귀여움이다.
18/Mar/2013
남을 통해 자신의 몰랐던 어느 부분을 발견하는 일은 재미 지다. 최근에 발견한 나의 어떤 재미난 점은 오래 알고 지내오다가 내가 마음을 활짝 열어버린 사람들 앞에선 나도 모르게 말이 매우 빨라진다는 것이었다. 평소엔 생각하는 대로 말이 잘 정리되지 않아 머릿속에서 이말 저말 먼저 짜맞춘 후 내뱉느라 대화가 좀 느린 편인 나로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십년지기 앞에서 우다다다 랩 직구를 시원하게 날리고 왔더니 자정이 넘은 지금 나는 너무 허기가 지고 마는데, 그래서 문득 드는 생각은 3일 전 내 아이폰 주워간 놈은 살림살이 좀 나아졌을까? 사실 3일간의 아날로그 생활도 나쁘진 않았다. 손목시계를 애정을 담은 눈으로 더 자주 봐주었고 친구와의 약속장소를 채팅으로 정한 뒤 포스트잇에 연필로 지도를 그려서 나갔다. 근처에 우리은행이 두 곳이나 있었는데 내가 그려간 우리은행 앞에 친구가 나와 있을지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다가 멀찌감치 보이는 그녀의 실루엣에 괜히 살짝 기분이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귀찮은 사람의 연락도 없었고 태국 궁마사지와 이니스프리 인사동점, 김미영 팀장님의 연락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생일축하 메세지도 받을 수 없었다. 그렇게 조금 심심하고 싱거운 26번째 생일을 보냈지만 어쩐지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까닭은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느리고 귀여운 것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함께 내 마음을 톡톡 건드렸기 때문이리라.
03/Mar/2013